명대 서가이자 문인. 자는 희철(希哲), 호는 지산(枝山). 장주(長洲 지금의 강소성 소주) 출신.
가학으로 시문과 서법을 배웠다. 글씨는 초서에 능해 당대에 '당백호(唐伯虎) 그림에 축윤명의 글씨'라고 칭송됐다. 당인(唐寅), 문징명(文徵明), 서정경(徐禎卿)과 함께 오중사재자(吳中四才子)로 꼽히며 오파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지증으로 오른손 손가락이 6개여서 호를 지산(枝山)으로 삼았다. 조숙한 천재로 주색과 도박 등의 기행을 일삼다 과거는 33살이 되어 응시, 향시에 급제했다. 이후 진사시에 계속 낙방해 벼슬을 포기하다가 중년에 잠깐 광동 흥녕현 지사를 거쳐 북경의 응천부 통판을 지냈다. 글씨는 임모를 통해 고금의 서법을 익혔으며 소해(小楷)와 당의 회소(懷素)에 뿌리를 든 광초로 특히 이름났다. 그림에도 능했으나 전하는 작품이 거의 없다. 대표적인 글씨로 <초서 혜강주회시(嵆康酒會詩)> <초서 조식시권(曹植詩卷)> <초서 구양수 상주주금당기(相州晝錦堂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