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유마경(維摩經)에서 이름과 자를 따왔다. 721년에 진사에 급제한 뒤 태악승(太樂丞)을 시작으로 이부낭중(吏部郎中)과 급사중(給事中)을 지냈다. 안사의 난 이후 안록산에게 벼슬을 한 이유로 투옥되었으나 난리 중에 읊은 시(응벽지(凝碧池))에서 망국의 슬픔과 군주에 대한 연민의 정을 토로한 점이 인정돼 사면됐다. 이후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상서우승(尚書右丞)를 지냈다. 이로 인해 왕우승이라고도 한다. 시서화에 모두 이름을 날렸으며 음악에도 정통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그림은 문인화의 시조로 불리우며 성당 시대를 대표하는 시로 시불(詩佛)로도 불린다. 시는 현재 약 400수의 시가 알려져 있으며 그림으로는 그의 그림으로 전하는 <강간설제도(江干雪霽圖)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