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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백행음도 안에는 이백이 없다 - 잘못 붙여진 제목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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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성 「오칭誤稱된 그림 제목의 위력: 양해梁楷 필 <이백행음도李白行吟圖> 재고再考」, 『미술사와 시각문화』 Vol.28, 2021.11, pp.210-231.


양해梁楷 <이백행음도李白行吟圖> 13세기초, 종이에 먹, 81.1x30.5cm, 도쿄국립박물관


뒷짐 지고 허공을 바라보며 시를 읊고 있는 이백李白(701-762)의 쓸쓸한 모습.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이백행음도>는 남송시대 화원 화가 양해(1150-?)의 대표작으로 감필법을 사용하여 극히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매우 유명한 그림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된 바가 없다. 제목의 ‘오칭’으로 짐작할 수 있듯 논문은 이 <이백행음도>에 그려진 것이 ‘이백이 거닐며 읊조리는[李白行吟]’ 장면이 아니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림 왼쪽 하단에 ‘양해梁楷’ 관지가 있다. 오른쪽 상단의 커다란 정사각형 인장은 감장인이다. (‘대사도인大司徒印’ : 네팔인으로 원나라 궁정화가로 일하다가 1278년 대사도가 된 아니거阿尼哥(1244-1306)으로 추정) 문제는 양해가 왕희지, 한산, 습득, 종규 등을 그렸다는 각종 기록 속에 이백을 그렸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인물이 이백이라는 근거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옛날 그림이 대개 그렇듯이 제목이 적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를 읊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명확하지 않다. 후대에 붙여진 제목 <이백행음도> 때문에 ‘이백이 시를 읊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 것이다. 시를 읊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두보일 수도, 도연명일 수도, 소식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이백이 거닐면서 시를 읊는 다른 도상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모습은 어떠한지 비교해 봐야 하겠다. 이백을 주제로 한 그림 중에 ‘이백행음’ 주제를 가진 다른 그림은 놀랍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백일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 그럼 누구일까.

논문에서는 그림을 그린 양해에 대한 문헌 기록부터 살펴본다. 1365년에 나온 『도회보감』에 간략 정리된 양해에 대한 기록에는 그가 ‘정교한 그림으로 유명했으나 세상에 전하는 그림은 감필법으로 간략하게 그린 것들뿐’이라고 했다. 현재 상하이박물관의 <팔고승도권>, 도쿄국립박물관의 <출산석가도>와 <설경산수도>, 타이페이국립고궁박물관의 <동리고사도> 등이 그의 정교한 화풍을 보여주는 그림들인데 이들은 모두 진위 논란이 있다. (<이백행음도> 역시 진위 논란은 있다.)

양해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 중 인물화는 왕희지를 제외하면 모두 도석 인물이며 선인들을 그린 것이다. (타이페이 국립고궁박물원과 프린스턴대학교 박물관에 양해 전칭의 <왕희지서선도>가 있음) 양해 전칭의 감필체로 그려진 도석화는 (원래 함께 그려지는) 한산과 습득을 제외하면 모두 한 인물만 그린 단독상이다. <왕희지서선도>는 이런 도석화와는 달리 왕희지가 부채파는 노인에게 부채에 글씨를 써준 고사를 담고 있어서 인물도 여럿이 그려져 있고 구도 또한 단독 도석인물화와 다르다. 


전傳 양해 <왕희지서선도> 종이에 먹, 27.0x61.0cm, 프린스턴대학교박물관


연구자는 양해 등 당시의 화가들이 이백이나 두보나 시인들을 신선 그림처럼 단독 인물상으로 그렸을까,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 자체로는 ‘이백을 단독상으로 그렸을 리가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일단 양해가 저명한 시인들을 감필체로 그린 다른 예가 없다는 것은 짚고 넘어갈 수 있다. (일단 이 그림이 양해가 그린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그가 이백을 단독상으로 그린다고 여기기 어렵다는 결론이 가능)

이백을 주제로 한 다른 그림들을 살펴본다. ‘주선酒仙’으로 불렸던 만큼 술과 기행이 유명했던 이백이지만 그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 남아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주로 네 가지 유형으로 그려졌는데, 1) 벼슬을 지냈던 관료로 그려진 이백 단독상, 2) 상월賞月, 착월捉月, 관폭觀瀑, 독조獨釣, 귀려歸驢 등 풍류객으로 묘사, 3) 고역사, 양귀비 등과 관련된 일화 포함 4) 신선으로 묘사된 이백 등이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관모/관복을 착용한 모습이다. 만취하여 관모가 벗겨진 모습이라든가, 관복을 입고 만취한 상태에서 시동과 환관이 부축하는 모습이라든가. ‘취태백醉太白’의 그림이 다수이다.


작자미상 <취태백도> 19세기, 비단에 채색, 영국박물관


토미오카 텟사이 <취이백상>, 푸바오스 <두보소상>, 푸바오스 <이태백상>


즉, ‘이백취음醉吟’은 다수 존재하는데 ‘이백행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백행음도> 속 인물은 절대 술에 취해 있다고 볼 수 없다. 연구자는 시를 읊으며 홀로 걷고 있는 모습, 행음과 더 많이 관련된 인물로 두보를 들었다. 한참 내려오는 예이긴 하지만 푸바오스(1904-1965)의 경우 솔밭을 거닐며 홀로 서 있는 등 유사한 인물상으로 두보를 몇 차례 그리면서, 이태백은 매화나무 사이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일본에는 에도시대 가노파 화가가 이 그림을 임모한 그림이 있다. 사실 양해 그림 두 점을 세트로 임모한 것인데, 하나는 이백행음도 모본, 또 하나는 동방삭도 모본이다. 동방삭은 실존인물이지만 대부분 그림에서는 서왕모에게서 불사의 복숭아를 훔쳐 달아나는 도교 캐릭터로 그려진다. 그런데 해당 임모본에서는 도교 선인이 아니고 조정 관료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동방삭은 박학하고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은거자처럼 살았던 인물이다. 이백과 동방삭(bc 154-93)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인물들인데 왜 세트로 임모를 했을까. 논문에서는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동방삭과 연결해 전국시대 인물인 굴원屈原(bc 343경~ 277경)을 제시한다. 동방삭은 임금에게 충성했으나 쫓겨나 불우한 생을 살았던 굴원을 존경했다고 알려진다. 


작자미상 <양해이백행음도모본> <양해동방삭도모본> 종이에 먹, 도쿄국립박물관


그렇다면 굴원은 그림에서 어떻게 그려지나? 주로 홀로 정처없이 떠도는 인물로 묘사된다. 『사기』의 「굴원가생열전」에는 모함을 받고 쫓겨난 굴원의 모습을 ‘강가에 이르러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가를 거닐면서 읊조렸다. 얼굴빛은 꾀죄죄하고 모습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야위었다’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傳 양해 <택반행음도> 비단에 먹, 22.9x24.3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


15세기말~16세기 활동한 주신의 그림 <답설행음도>에서 추운 겨울 물가를 거니는 한 문사를 그리고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굴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가를 거닐며 읊조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굴원을 묘사한 진홍수의 판화 <굴자행음도>도 마찬가지다. 굴원의 대표 이미지는 물가를 걸으면서 읊조리는 형상이라고 볼 수 있다. 

양해 전칭작 <택반행음도澤畔行吟圖>(또는 <책장도策杖圖>)에도 지팡이를 짚고 물가를 걷는 사람이 있는데, 이를 굴원으로 보는 것 또한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인물이 굴원이라면 <이백행음도>의 인물도 굴원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이것이 결론이다. 해당 그림 <이백행음도>의 인물이 굴원이라는 근거가 다소 빈약하기는 한데, 최소한 이백일 가능성보다는 훨씬 높아 보인다. 

이 연구는 그림의 인물이 어찌해서 이백으로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일본인 연구자 쿠마가이 노부와 시마다 슈지로가 1951년에 쓴 각자의 글에서 이 그림을 <이백행음도>로 칭한 것이 시작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이후 중국회화사 모든 분야에서 동방삭도와 세트인 상대 그림은 <이백행음도>로 불렸고, 이것이 영미권 서적에도 실리면서 전세계적 위력을 떨쳐 모든 사람이 이 인물은 이백이라 단정해 버리게 됐고, 그에 대한 자세한 연구도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이 그림에 있는 단정하게 행음하는 인물이 늘 취해있었다는 이백이라니, 그러고 보니 이미지가 많이 다르기는 하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면을 가졌고 이백 또한 그랬을 수 있지만, 동아시아에서 도상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미지와 표현을 생각하면 확실히 무리가 있는 가정이다. 화가가 인물과 더불어 살짝 물가 배경을 넣었다면 좀더 정확했을 텐데, 하는 것과, 그림에 제목을 붙이는 일의 무거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0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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