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서 전해지는 봄 소식 <백자 양각 매화무늬 연적> 2019.03.04
다른 나무들보다도 먼저, 잎보다도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 그래서 꽃의 우두머리,'화괴花魁'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 매화는 추운 날씨에도 굳은 기개로 꽃을 피워내고 은은한 향기로 주변을 밝혀 옛 선비들이 가장 사랑했던 식물입니다.이육사의 시 「광야」에도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라는 ...
새봄에 시작된 조선시대 세자의 공부 - 왕세자 입학도첩 중 <출궁의> 2019.02.27
황사 가운데에도 봄바람이 따스하다. 푸른 새싹도 머지않았는데 자연이 소생하는 봄의 또 다른 풍물시는 단연 입학식이다.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초등학교 입학식. 천방지축 꼬맹이들이자 미래의 주인공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현장이다. 조선 시대에도 새 봄이 되면 공부가 시작됐다. 왕실은 봄...
심사숙고하는 중인가 - 전 조지운 <송학도> 2019.02.20
새 중에서도 학은 큰 새다. 목을 곧추 세우고 서 있으면 1미터가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런데 행동에는 꿈뜨거나 어정거린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덩치가 큰 타조는 궁둥이를 뒤뚱거리는 모습이 먼저 생각나는데. 예전부터 학의 포즈는 관찰 대상이었다. 하늘을 보고 우는 것을 누천(淚天)이고 했고 날개를 너울거리...
조선후기 국민주택타입의 청화백자연적 2019.01.30
집이 시끄럽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집값이 오른다고 아우성이더니만 이제 거래가 끊겨 공인중개사들이 굶어죽게 생겼다고 한숨이다. 더해서 공시지가 재조정으로 재산세를 걱정하면서 ‘집하나 있는 게 죄냐’는 항변도 속출한다.집은 사람 사는 기본이다. 이 문제는 비단 오늘날만의 사정은 아니다. 조선후기에도 심각...
네 죄는 조사가 이미 끝났느니라 <염라왕도> 2019.01.16
지옥에 있다는 염라대왕의 심판소 장면이다. 국화문 레이스가 달린 탁자에 한 팔을 짚고 비스듬히 앉은 사람이 염라대왕이다. 끌려와 심판을 받는 자는 셋. 남자 둘에 여자 하나이다. 남자 하나는 큰 칼을 머리에 쓰고 있고 여자는 상반신이 벗겨진 채 꽁꽁 묶여 순번을 기다리는 중이다. 업경대라는 죄상을 비춰주...
[신년특집] 2019 기해년, 우리 그림 속의 돼지 2019.01.02
호랑이, 용, 말, 소, 심지어 원숭이나 쥐도 우리 옛 그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12지 동물 중 가장 그 예를 보기 드문 것이 돼지이다. 돼지가 우리에게 재물 복, 먹을 복을 상기시켜 준다는 사실에 비춰봤을 때는 조금 의아한 일이다. 돼지꿈에 복권 사기, 정월 상해일(上亥日)에 가게 문 열기, ...
흰 눈에 뒤덮인 강산 <기마도강도> 2019.01.02
어느 강변인가. 앙상한 나무 가지위에는 눈이 소복하다. 뒤쪽으로 보이는 강 언덕도 흰 눈이 덮인 듯 흐릿한 배경에 언덕만 희게 남겼다. 그 계곡 사이로 흰 말과 검은 말에 각각 올라타 강을 건너는 인물이 보인다. 강 한 복판에서 뒤를 돌아보는 이들의 시선은 오른쪽 기슭의 일행 세 명에 향해 있다. 선발대...
염치없는 세상에 다시 보게 되는 문자도 2018.12.26
굵은 한자 획 안에 그림까지 들어있어 글자를 알아보기 쉽지 않다. 첫 번째 그림의 글씨는 염(廉)자다. 뜻은 ‘청렴하다’ ‘검소하다’ 등. 두 번째 글자는 더 읽기 어려운데 부끄러울 치(恥)이다. 두 그림 모두 문자도의 일부이다. 문자도는 19세기 이후에 크게 유행했는데 효(孝), 제(悌), 충(忠), ...
현대적 색감과 시원시원한 구도 - 자수 매화도 10폭 병풍 2018.12.24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의 공예품들 가운데 손꼽히는 것으로 자수(刺繡)가 있다. 북한 자수솜씨는 조선시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현재 남아있는 자료는 대개 19세기후반 이후의 것이다) 그중에서 특히 안주가 유명했다. 자수하면 얌전한 처자가 규수가 수틀 앞에 앉아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새기는 것이라...
팔대산인의 민화풍 화조영모도 2018.12.12
제목 : 학, 사슴, 오리, 기러기 화가 : 팔대산인 주탑(八大山人 周耷 1713-1791) 크기 : 각 140x40cm 소재 : 종이에 수묵 전시 : 치바이스(齊白石)와의 대화(예술의전당서예박물관 2019년2월17일)절로 ‘앗!’하는 소리가 나는 그림이다. 본명 보다 팔대산인이란 호로 유명한 명말청초 ...
눈보라 몰아치는 밤을 돌아가는 나그네 2018.11.28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몰아치는지 한가운데 커다란 가지의 나무 전체가휘어진 모습의 그림입니다. 그 아래로 나그네가동자를 데리고산길을 걸어가는데, 어설픈 초가집 앞을 지키는 검은 개 한 마리가 나그네를 보며 컹컹 짖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직업화가 최북(崔北 1712-1760)이 그...
희미하게 보이는 부처님 <무후대불> 2018.11.14
입시철을 맞아 불상 그림을 하나 올려봅니다. 산수화 같아 보이는 이 그림 안에 부처님이 계십니다.그림을 그린 유숙(劉淑, 1827-1873)은 화원 출신으로, 김정희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조희룡, 허련 등처럼 그의 지대한 영향권에 있는 제자들과는 달리, 테크니션으로서 도화서의 전통을 따른...
한산도, 수군이 지키는 제승당 2018.10.31
제승당은 통영 앞바다 한산도에 있는 건물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 한산대첩 이후 이순신이 지은 것으로, 정유재란 때 소실되기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이후 영조 때 통제사가 다시 지었고 1963년 대한민국 정부가 사적으로 지정, 보수하며 관리해 왔는데, 현재의 건물은 1...
가을의 한가운데, 장승업 <파초도> 2018.10.16
바나나처럼 생긴 파초. 중국 남부 따뜻한 지방에 살던 식물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내기에 그만이었던 탓일까요. 중국 유명 문인들의 글에 단골로 실려 왔던 파초는 고려 후기부터 이 땅에 살던 문인들이 사랑하여 정원에 고이 심고 길러 왔습니다. 조선 후기에 화훼에 대한 취미가 유행하고 문인화나 화보의 영향이 더...
시든 연꽃과 물총새 2018.09.27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화첩 『화원별집』에 들어 있는 작은 그림입니다. 창강 조속(趙涑, 1595-1668)의 작품인데, 여백이 많고 대부분 옅은 먹을 써서 담백한 느낌을 줍니다. 새의 부리와 눈, 날개 끝, 다리 쪽에 날렵하고 짙은 먹선이 돋보입니다.연밥만 남은 가는 연꽃 줄기에 앉아 하늘을 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