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는 글자는 맨정신인가 놀이인가 - 신윤복 <청금상련> 2020.07.22
신윤복 <청금상련> 종이에 담채, 35.6x28.2cm, 간송미술관한여름 하면 생각나는 꽃은 많다. 그중 연꽃도 빠질 수 없다. 수만 송이 연꽃으로 유명한 양수리 세미원의 관리자는 ‘아무래도 7월 말 이후가 되어야 연꽃이 만개한다’고 말한다. 연못에 연잎만 가득하고 연꽃은 그 사이로 듬성듬성 ...
솔바람 솔솔 부는 솔밭 그림의 최고 명수는 - 정선 <청송당> 2020.07.20
코로나로 인해 산과 숲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소식이다. 코로나 재난이 아니더라도 7월은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것을 빼놓으면 솔바람 솔솔 부는 솔밭이 절로 생각나는 시절이다. 조선 화가 가운데 솔밭을 가장 잘 그럴듯하게 그리고 가장 멋들어지게 그린 화가는 단연 18세기의 겸재 정선(謙齋 鄭敾)이...
한중(韓中) 인연 절정기에 그린 우의(友誼)의 흔적 - 신명준 <산방전별도> 2020.07.15
19세기 묵죽화의 대가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1847)의 장남이자 문인화가였던 신명준(申命準 1803-1842)이 그린 <산방전별도>이다. 그림은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산방에서 열린 전별연의 한 장면이다. 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고 한 사람은 서 있다....
맨드라미와 고추잠자리가 있는 작은 이야기 풍경 2020.07.06
붉은 맨드라미의 계절인가. 어디선가 귀청 떨어질 듯한 매미울음 소리가 들려준다면 저절로 여름날의 한 장면이 되는 그림이다. 조선 그림에 그림자까지 그려 넣기로 했다면 머리 위에서 내려꽂히는 직사광선에 꽃밭 맨드라미의 그림자는 작은 손바닥만 했을 것이다.그런 따끈따끈한 볕이 상상되는 한낮에 우리 검둥이는 ...
하와이언 셔츠가 어울릴 법한 시원한 종려나무 - 정수영 <종려도> 2020.06.29
올여름 무더위는 각오하라는 예고가 있다. 지난겨울이 그렇게 따뜻했던 만큼 여름 더위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더위 하면 산과 강이 먼저 떠오르나 이번 여름은 고민스럽게 됐다. 코로나 19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각하면 적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바이러스 재앙이 없던 조선 시대의 피서는 어땠는가....
소동파의 흥취를 시에 담게나 - 신명준 <시령도> 2019.12.04
밤인가, 낮인가. 먹으로만 그린 수묵화로는 그걸 알아보기 쉽지 않다. 그런데 오른쪽에 절벽처럼 보이는 산등성이 위로 해인지 달인지 알 수 없는 작은 원이 그려져 있다. 이는 달을 그린 것이다. 어째서 달이라는 것을 금방 단정할 수 있는가. 왼쪽 끝에 보이는 새 한 마리가 힌트다. 이 새는 끼룩끼룩 길게 ...
한국과 일본, 좋은 이웃(善隣)의 기억 - 이시자키 유시 <통신사선도> 2019.07.03
상가에 가서도 사람들은 밥을 먹는다. 죽은 사람 옆에서 놓고 밥숟가락을 들었다고 해서 망자에 대한 애도의 마음이 간절하지 않거나 옅다고는 할 수 없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0년이 되는 해에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보냈다. 포로로 잡...
설악산 웅장한 모습 고전적 준법에 세밀한 필치에 담아 - 이상범 <설악산> 2019.06.12
큰 나무 밑에 있는 작은 나무는 억울할 때가 있다. 혼자 놔두면 얼마든지 크게 자랄 수 있는데 큰 나무 그늘에 들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애초부터 뻗어나갈 기회를 빼앗긴 것이다. 산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금강산에 비하면 설악산이 그런 처지다. 금강산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
신입생 과제에서 발견한 정교함 - 이한복 <맨드라미> 2019.05.22
무더위가 한결 일찍 찾아와 문득 여름 생각이 날 정도다. 쨍쨍 내리쪼이는 햇빛, 매미 소리, 수면 가득한 연꽃 그리고 아무도 없는 화단에 홀로 서있는 맨드라미 등. 크게 내세울 게 없는 꽃이지만 맨드라미가 그림에 들어온 것은 아주 일찍부터다. 계관화(鷄冠花)란 한자 이름 때문에 관직이나 출세를 상징하며 ...
이 길로만 갔다면 어떤 신천지가 열렸을까 - 노수현 <신록(新綠)> 2019.05.08
제목 그대로 온 산에 그리고 온 들에 파랗다. 봄이 돌아와 가지의 새싹과 밭두렁의 새잎으로 온천지가 초록으로 물든 산골 정경이다. 멀리 보이는 개울의 물이 한층 불었고 밭두둑에는 일 나가는 농부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인다. 하얀 물줄기 몇몇과 앞쪽 언덕에 살구꽃인지 자두꽃인지 모를 새로 핀 희고 노르스...
시냇물에 발 담그고, 사립문에 기대 석양을 보다 - 전 이민성 <산수도> 2019.04.30
올해는 유난히 봄의 꼬리가 긴 것 같습니다. 이제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이렇듯 아침저녁 찬 바람 선뜻했던 날씨를 그리워하게 되겠지요.국립중앙박물관에 숨어 있는 두 폭의 그림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린 사람이 정확치 않은데, 박물관 자료에는 이민성(李民宬)의 그림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 ...
사람 눈을 속일 만큼 빼어난 필사(筆寫) 솜씨 - 다산문답(茶山問答) 2019.04.24
조선 문화는 아무리 말해도 개방적이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구한말에 쇄국이란 말이 많이 쓰였지만 그 이전부터 쇄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외부와 단절된 환경에서는 남과 다른 문화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특수성에 관한 것이다. 붉고 노란 채색을 단 한 번도 쓰지 않고 이삼백...
높은 데 올라 꽃을 즐기는 풍류의 마음 - 임득명 <등고상화> 2019.04.03
교양에 학식이 있다는 남자들이 거짓말을 한다. 여자도 거짓말을 한다. 늙은 사람처럼 젊은 사람도 거짓말 같은 말을 늘어놓고 있는 요즘이다.어째서인가. 멀리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 할 게 없다는 말은 이들에게 가혹할 것이다.그렇다면 높은 데 올라가 꽃을 보면서 혼탁해진 마음을 씻어보는 일은 어떤가. 조선후...
의좋은 형제들의 그림 - 홍낙최 <국접도> 2019.03.20
달빛 아래 형제가 서로 볏단을 지고 형에게, 아우에게 가져다주다가 딱 마주쳤다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무색하게 형제간의 싸움이 작금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마땅히 부끄러운 일이겠지. 조선 르네상스라는 18세기 한가운데에 그림으로 의좋은 모습을 보인 형제들이 있다. 서울의 홍씨 재상집안 4형제로 이...
친구와 밤을 지새며 그린 사계절 - 정선 <춘경산수> 2019.03.19
1719년,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사계산수화첩> 또는 <기해년화첩>에 들어 있는 <춘경산수> 즉, 봄의 경치를 그린 산수도입니다. 가로로 넓은 화폭의 가운데 근경으로 푸릇푸릇 잎이 돋아나는 나무 몇 그루와 건물이 하나 보이고, 다리로 연결된 강건너...